여행 이야기

與猶堂에서 茶山을 생각하다

솔뫼1 2020. 5. 24. 17:06

與猶堂에서 茶山을 생각하다

茶山선생이 말년에 한강을 바라보며 그린 산수도 열초산수도가 새겨진 기념비석.

천리를 흘러 온 南北漢江이 만나는 양수리의 茶山생태공원을 찾았다. 공원입구에 서있는 자그마한 돌비석엔 茶山이 말년에 강물을 바라보며 그린 산수도 한 폭이 새겨져 있다. ‘열초산수도라고 한글로 제목이 새겨져 있다.

 

인간세상의 온갖 애환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원 앞을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평온하기만 했다. 잔뜩 흐린 하늘과 그 하늘을 반사한 강물은 온통 하얗게만 보였다. 마치 세상의 모든 아름답지 못 한 것을 하얗게 감추려는 것 같았다. 강물 너머로는 두 하얀색 사이로 초록으로 짙게 물든 5월의 산들이 가로로 길게 벋어나가고 있었다.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 코로나19가 몰고 온 답답함도 털어 낼 겸 찾은 곳이다.

 

그 날은 마침 내가 나가는 교회의 일요일 예배가 두 달여 만에 본당에서 있은 5월의 둘째 일요일 이었다. 다만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시책에 따라 전교인의 25%정도만 참석했었다. 미리 참여 신청을 해서 나온 교인들은 마스크를 하고 전후좌우로 널찍널찍 떨어져 앉아야 했다. 오랜 그리움 때문에 참석한 본당 예배였다. 그러나 그렇게 드린 예배는 답답했던 기분을 오히려 더 답답하게 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니 잔뜩 흐린 하늘에선 금방 비가 뿌릴 것처럼 보였다. 이래저래 답답한 마음에 집사람과 교외로 차를 몰았다. 도도히 흐르는 넓은 강가에 앉아 바람을 쐬면서 답답함을 달래려고 팔당호 쪽으로 나갔다. 날씨는 흐렸지만 녹음이 짙어진 산들과 팔당호수의 드넓은 수면을 보니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특히 남북에서 흘러 온 거대한 두 물줄기가 만나는 양수리는 마치 바다처럼 보였다.

 

조금 더 가면 철길이 옮겨가 지금은 폐역이 된 옛 중앙선 능내역 근처 한강둔치에 새로 조성된 공원이 나온다. 다산생태공원이다. 갖가지 수목이 무성한 공원엔 산책로와 쉼터가 잘 정비돼 있었다. 햇살이 없는데다 강바람 때문에 처음엔 좀 서늘하게 느껴졌지만 금방 시원함속으로 빠져 들었다. 산책로를 걷고 전망대에도 올라보고 예쁜 화초도 감상했다. 그리고 강물 바로 앞에 둔 벤치에 앉으니 넓은 강물 너머로 맞은편 녹색의 산들이 손잡고 한 줄로 늘어선 모습으로 이어진다.

 

공원은 산책로와 전망대, 쉼터 등이 잘 정비돼 있다.

그 순간엔 코로나19의 횡포도, 또 그 감염병이 몰아다 준 답답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기가 느껴질 무렵 우리는 근처에 있는 茶山 丁若鏞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임금님의 총애까지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茶山이었다. 그러나 반대세력의 집요한 시기와 모함 때문에 38세 때인 1800년에 낙향해 살면서 집의 이름을 여유당(與猶堂)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茶山이 다음해2월 경남 기장을 거쳐 11월엔 전남강진으로 유배를 가는 바람에 18년 후에야 다시 이 집으로 돌아와 75세까지 살았다. 지금의 與猶堂1925년 대홍수때 유실된 후 1986년에 복원된 것이다.

 

생가 뒤 언덕 양지쪽에 마련된 유택에서 선생은 오늘도 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184년전 이 곳에 누운 선생은 그 짧지 않은 세월에 이 나라에 일어난 한스럽고 가슴 아픈 모든 일을 보았을 것이다. 또 지금 전개되고 있는 세태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선생의 유택 앞을 흐르는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고 주변 산천엔 여전히 녹음이 푸른데!

 

만발한 오동나무꽃의 청아한 모습에서 茶山의 고귀한 품격을 생각해 봤다.

선생의 높은 뜻을 새기며 귀경 길에 올랐다. 그 생태공원을 찾는 오늘의 남녀노소 후예들은 선생의 이런 뜻을 어떻게 새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