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난 손녀와 강가에서 느낀 행복
< 가을 날 오후의 素描 >
네 살 난 손녀와 강가에서 느낀 행복
‘가을 하늘 공활(空豁)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 가사에도 나오는 이 말이 정말로 실감나는 요즘 며칠 동안의 날씨입니다. 넓고 높고 구름 몇 점만 둥둥 떠가는 파란 하늘이 계속됐으니까요. 이렇게 청명하고 바람 선선한 날엔 집안에 가만히 있기가 무척 힘들지요. 모르긴 해도 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70을 훌쩍 넘긴 나이인 만큼 특별히 할 일도 없는지라 저는 이런 날엔 망설임 없이 밖으로 나가는 쪽을 택합니다. 마침 동반자가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몇 군데 전화해 동반자가 생기면 산길이든 평지길이든 행장을 꾸려서 달려 나갑니다. 이것은 내 나이 또래의 은퇴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나가서 맘껏 걷거나 산을 탄 후 막걸리 한잔을 마십니다. 그 막걸리 잔에 개똥철학일망정 듬뿍 담아서 세태를 논하는 즐거움도 괜찮더군요.
그런데 그저께 토요일 오후엔 그 어떤 동반자들보다 더 정다운 동반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걸으며 가을을 즐겼습니다. 드넓은 한강의 물줄기가 서쪽을 향해 도도히 흘러가는 여의도 한강공원이었습니다. 구름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초가을 햇살의 따가움은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식혔습니다. 잔등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에 실어 보냈습니다.
여의도의 어느 맛 집에서 우리 부부와 두 딸, 네 살짜리 손녀가 식사하고 나선 산책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원 곳곳에서 멋진 초가을 날의 오후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 중 제일 신이 나는 사람은 단연 손녀였습니다. 이제 웬만한 우리말은 자유자재로 할 줄 아는 손녀는 쉴 새 없이 얘기하고 달리고 노래합니다.
하늘은 왜 파랗고 강은 어째서 바다처럼 생겼나? 이건 뭐고 저건 뭐야? 저 큰집의 지붕은 왜 둥그렇게 생겼지? 모든 게 신기하고 눈에 띄는 사물들은 모두 다 알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즐거운 나들이에 네 살 손녀가 기쁨까지 더해준 주말 오후의 가족 나들이는 즐겁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소한 즐거움이고 행복이 아닐까요?
가을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강물 위를 세 요트가 순풍에 돛 세우고 달립니다. 강 건너 도시의 빌딩들 위와 그 너머 북한산 자락엔 평화와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이 평화스런 광경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행복이겠지요? 다만 요즘 들려오는 온갖 시국담들이 너무 흉흉하고 아름답지 못 한 것 같아 걱정은 됩니다.
따가운 가을햇살 아래서 강바람을 가르며 뛰고 노는 천진한 어린 손녀가 귀엽고 행복해 보입니다. 저 어린아이가 살아 갈 세상은 평온과 아름다움이 가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맑았던 그 가을 날 오후의 여의도 한강공원이 저와 우리가족에게는 바로 낙원이었습니다. 이런 낙원이 오래 오래 있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