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 斷想 > 자연은 즐기는 만큼 즐거움을 준다

솔뫼1 2019. 2. 12. 17:42


자연은 즐기는 만큼 즐거움을 준다

 


  

새벽하늘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샛별과 눈썹 같은 그믐달을 보셨나요?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솟는 아침 해를 당신은 얼마나 자주 보는가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기분으로 무슨 생각을 하시는가요? 어디 이런 모습뿐일까요?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의 잔물결, 서편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며 장엄하게 넘어가는 저녁 해, 산들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들에서는 무엇을 느끼나요?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이 주어지는 모습이지만 이를 보지 못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거장들이 남긴 모든 위대한 예술작품이나 음악, 조상들의 얼이 깃든 문화유산들도 아는 만큼만 보이고 들린다.’. 저는 이 말을 일상 접하는 자연의 풍경에도 원용하고 싶습니다. 자연은 즐기는 만큼 아름답고 기쁨을 준다고. 다시 말해 자연은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고 말입니다. 똑 같은 모습이지만 무심히 보아 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온갖 감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입에 넣어야 짜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펼쳐지는 많은 산과 강, 들판과 하늘, 높은 빌딩들과 각양각색의 건물들도 보는 사함마다 다르게 볼 것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똑 같이 쳐다보는 자연현상 역시 천인천색 만인만감(千人千色 萬人萬感)으로 각인될 것입니다. 내리는 눈송이나 비를 보면서도 어떤 이는 웃을 것이고 다른 어떤 이는 울 수도 있으니까요. 새빨갛게 피어있는 꽃 한 송이에서도 정열과 기쁨을 느끼는가 하면 피맺힌 아픔을 느낀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에서 즐기는 만큼 즐거움을 얻을 수가 있겠지요?

 


저는 한강 남쪽의 대단위 아파트촌에 삽니다. 낮은 동은 14층이고 최고층은 25층인 아파트 건물들이 밀집한 곳입니다. 나름대로 정원도 잘 꾸며진 새 아파트단지입니다. 그렇지만 높은 층에서 내려다보면 정원의 수목들은 모두 땅에 달라붙은 듯 하고 오가는 사람들도 움직이는 조그만 점들처럼 느껴집니다. 게다가 아파트 주변에는 높고 낮은 각종 빌딩들과 주택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지요. 한 마디로 삭막하다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을에도 시각과 생각에 따라선 표현의 반전이 일어난답니다. 저는 비교적 일찍 자기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납니다. 간밤에 불기둥처럼 높게 솟아 화려했던 아파트 건물들은 새벽엔 띄엄띄엄 불빛이 보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수많은 불빛과 가로등빛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간혹 동편하늘에선 초롱초롱 빛나는 샛별도 보이고 미인의 눈썹을 닮은 그믐달이 수줍은 듯 떠있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의 꿈속을 헤맬 때 이런 멋진 모습이 펼쳐집니다. 그것들은 오르지 즐기는 사람들만의 몫입니다.

 


저 멀리 동쪽하늘이 붉은 빛을 띄울 때쯤 따스한 옷차림으로 근처의 공원으로 달려갑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로변의 휘황한 가로등 불빛들이 함께 달리자고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큰 길을 건너고 주택가 골목을 달려 넓은 공원에 이르면 조명등 밝힌 넓은 잔디밭과 운동경기장들이 새벽을 즐기는 사람들을 반겨줍니다. 산책로를 따라 밝게 켜진 가로등들도 아직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쏟아지는 불빛이 여명의 공원을 지키는 셈이지요.

 


이윽고 해님이 아침노을들의 붉은 환호를 받으며 올라옵니다. 때로는 건물사이에서, 때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솟아오르지요. 그때까지도 불이 켜져 있는 근처 고층빌딩들의 불빛들은 밝아오는 햇살 뒤로 슬슬 숨기 시작합니다. 해는 공원 연못의 얼음위에 길고 붉은 꼬리를 드리우고 온 세상을 붉게 물들입니다. 옛날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주제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풍경 역시 즐기는 사람들만의 몫입니다.

 



해가 높이 솟으면서 동쪽하늘의 붉은 색도 옅어집니다. 이때쯤이면 하늘에 높이 떠있던 하현달도 빛을 잃고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지려 합니다. 멀리 관악산 위의 안테나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선명하게 보이고 그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반짝반짝 아침햇살을 반사하며 고도를 낮춥니다. 아마도 김포공항으로 가나봅니다. 공원의 얼음 한 곳이 녹은 곳에선 물오리들이 모여 세수를 하는 고요한 겨울 아침 풍경입니다.

 


공원을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 내뿜는 하얀 입김조차 아침햇살에 더 뽀얗게 보입니다. 이 또한 아침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겠지요? 자연은 즐기는 사람에게만 즐거움을 주니까요. 이제 겨울도 끝자락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도 새봄의 새 풍경들을 즐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거기엔 또 다른 즐거움과 기쁨이 기다라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