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斷想 > 오해부른 손동작
오해부른 손동작
“뭐가 들어있길래 그렇게 감춰요?”
“뭘?”
“보여주던 핸드폰 급히 가져갔잖아요?”
집사람의 말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말투 때문에 엉뚱한 곤란을 겪는 일이 잦다. 별다른 뜻 없이 한 말에 비난을 받고 오해를 산다. 그것도 남들보다는 가족들에게 더 그렇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잦은 걸 보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런데 좀체 고쳐지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더욱 답답하다.
그런데 그날은 작은 손동작 하나가 사단을 만들었다. 지난3월 초순 어느 날의 일이다.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일주일째 기승을 부리던 날 오후였다. 정부에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이 ‘차량운행 제한’등 효과도 별로 없는 비상저감조치만 발표하던 때였다. 외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기가 탁했다. 밝은 봄빛을 뽐내어야 할 해님도 빛을 잃었다. 정말 우중충하고 불쾌한 날이었다.
아내는 막 외출에서 들어온 직후였다. 이런 날씨 탓에 심기가 불편해졌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집사람의 느닷없는 질책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사람을 화나게 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나의 어떤 행동 때문에 그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차례 더 가시 돋친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오가는 말들이 고울 리가 없었다. 그러다 서로의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던가? 그렇지만 큰 싸움을 벌이지는 않았다.
흥분이 가라앉은 후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깡촌 출신인 나는 대학진학 하면서 서울에 왔다. 반면 집사람은 서울토박이다. 서로의 어린 시절에 형성된 문화차이는 함께 한 세월이 길어도 해소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우리부부는 하찮은 일을 갖고도 가끔 티격태격 하곤 했다. 나는 평소 사용하는 내 어투가 과격해 잦은 오해를 일으킬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나는 서울에 와서 한참동안 사투리와 말투 때문에 많은 놀림을 받았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대신 웃기부터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겐 그것이 상당한 ‘마음의 상처’로 각인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표준말을 쓰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서울이나 수도권 출신으로 알 정도였다. 그만큼 나는 표준말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향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흥이 나면 목소리가 커지고 사투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사람들과 격한 토론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 내 말 때문에 가장 많이 부딪치는 사람들은 집사람과 두 딸이다. 그들은 모두 나고 자라면서부터 표준말을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수시로 튀어나오는 나의 말, 특히 경상도식 강한 어투 때문에 당황스러워 했다. 가족들과 예민한 얘기를 나누게 되면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내 목소리가 커지고 빨라진다. 말투 또한 퉁명스럽거나 쏘아붙이는 것처럼 된다. 그러면 예외 없이 가족들은 ‘그만한 말에 왜 화를 내느냐?’고 핀잔을 준다. 나는 전혀 화를 낸 게 아닌데도 항상 그런 오해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잘 못된 어투 때문이리라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 벌어진 일은 뜻밖에도 말이 아닌 행동 때문이었다. 그것도 전혀 내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행동 때문에. 나는 그 때 집사람 외출 중에 걸려온 전화내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 사람은 먼저 집사람에게 전화했다가 연락이 안 되자 내게 용건을 남겼기 때문이다. 전화내용과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확인시킨 후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 과장에서 사단이 생긴 것이다. 나는 자연스레 넣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사람은 무슨 비밀스런 내용이 있어 그것을 감추려는 것으로 여긴 모양이다. 무심코 한 행동이 이처럼 엉뚱한 오해를 자아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 행동이 왜 그렇게 느껴졌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짚이는 게 있었다. 말은 표준말 수준으로 고쳤지만 그에 못 지 않는 행동에는 내가 무심했던 것 같다. 친숙하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겐 함부로 말하고 행동했다. 특히 많이 신경을 쓴 말보다는 덜 의식한 몸짓이나 행동들이 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가족들에게 잦은 오해를 일으킨 것 같았다. 왜 좀 더 부드럽고 오해 없게 행동을 못 했을까? 집사람에게도 오해받을 정도였으니 평소의 내 행동들이 남들에겐 어떻게 비쳤을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오해를 살 행동들을 했을까? 집사람이나 딸들은 그때그때 지적이라도 해주었지만 남들은 속으로만 욕했을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 못 했다고 그런 행동들이 정당화 될 수는 없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내 나이 비록 70살이 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말 못지않게 행동, 특히 작은 몸짓하나라도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집사람과 딸들에게도 그래야겠다.
갑자기 ‘철들자 망령난다’란 옛말이 떠오른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