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光陵 樹木園 녹색에 반하다

솔뫼1 2020. 5. 29. 22:34

光陵 樹木園 녹색에 반하다

 

눈만 뜨면 그들의 녹색을 보면서 70년 넘게 살았다. 그랬지만 나에게 그들 대부분은 아직도 이름조차 모르는 존재일 뿐이었다. 얼굴은 잘 알면서도 이름을 모르는 많고 많은 그들 앞에서 난 할 말을 잊었다. 내가 자신 있게 이름을 아는 건 열 손가락도 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광릉국립수목원에 들렸다. 국내에서 나무나 화초들을 가장 많이 기르고 있으며 관리도 가장 잘 한다는 수목원이다. 또 관리는 물론이고 희귀종의 발굴이나 증식, 보호에다 외래 식물들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천연림뿐만 아니라 인공조림까지 포함해 2,405ha이나 되는 널은 숲이다. 수목원 전체가 20106월에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나는 이날 세 번째로 이 곳을 찾았다. 그러나 앞의 두 번 방문은 2030년도 넘은 옛일이어서 잘 기억이 안 난다. 이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도 있지만 좀 불편하다. 그래서 아참에 예약을 하고 승용차로 갔다. 그래야만 수목원의 주차장을 이용할 수가 있다. 준비물이야 간식이나 먹을거리만 가져가면 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수목원까지는 약60km 거리. 서울동북쪽 구리시를 지나 포천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서 1시간20분 쯤 걸렸다. 매표구에서 입장권을 사야하는데 65세 이상은 무료다. 매표소를 지나 개천을 가로지른 돌다리를 건너 대로를 따라가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나온다.

 

넓은 길, 좁은 길, 생태체험 숲길 등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 늪지도 있고, 수련이 곱게 피어나는 저수지급 연못도 있다. 키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길도 지나고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한 숲속도 지난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산책로도 잘 갖춰져 있다. 온갖 종류의 꽃들도 가득하다. 심하진 않지만 오르막길도 걷고 식물원도 있었다. 다년생 화초는 물론 한 해살이 화초들도 부지기수다.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나오면 되는 곳, 광릉국립수목원은 그런 곳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짙은 녹색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가 다 경이로웠고, 보기도 좋았다. 속세를 벗어난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 중 광활한 넓이에 조성된 전나무 숲은 정말 장관이었다. 대나무처럼 하늘높이 솟은 전나무들이 임해(林海)를 이룬 곳이다. 산책로를 걸어가는 동안 하늘을 찌를 듯 대나무처럼 곧게 자란 전나무들의 둥치들만 빽빽하게 계속됐다. 그 전나무들의 바다 가운데 쉼터가 있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니 길고 깊은 원통 위에 하늘이 보였다. 안내판을 보니 1923년부터 1927년까지 오대산 월정사 일대에 있는 전나무에서 종자를 채취해 이곳에서 증식시킨 숲이란다.

 

전나무 숲속으로 이어지는 약간 오르막길을 지나서 내려오니 넓은 길 좌우로 다시 온갖 수목과 꽃나무들이 펼쳐진다. 그냥 숲의 바다를 걸었고, 무수한 종류의 나무들과 꽃들을 벗 삼았다. 불두화 나무는 너무 많은 꽃을 피워 가지가 휘어져 땅에 닿았다. 하얀 꽃들이 쌀밥을 연상시키는 이팝니무는 커다란 원뿔처럼 보였다. 좋은 곳이 나오면 벤치에 앉았고,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에 취할 때쯤엔 일어서서 걸었다. 실로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녹색의 바다를 즐기며 마음껏 걸었다. 남의 눈치 볼 일도 없어 더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