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日本 자쿠찌야마(寂地山) 트레킹 ① >
편백나무 향기와 雲霧에 취하다
운무가 드리운 산허리엔 태고의 신비스러움마저 감돌았다. 그 신령스런 운무를 뚫고 하늘로 치솟아 오른 편백나무들의 군무를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빽빽하게 들어 찬 편백나무 둥치들은 마치 왕대나무숲속의 풍경을 방불케 했다. 다만 똑 바로 솟은 나무둥치들이 짙은 갈색인 것이 대나무숲속과 달랐다. 이 때문에 높다란 갈색의 벽이 우리 일행 주위에 둘러 처져 있는 것 같았다. 그 갈색의 벽 위를 짙푸른 나뭇잎들이 덮고 있어 아래는 대낮인데도 컴컴할 정도였다. 10월29일 낮12시 일본 야마구찌현 자쿠찌야마(山口縣 寂地山)의 풍경이다.
그 산과 부산의 오륙도 해안 길을 포함한 3박4일 일정의 트레킹 여행을 다녀왔다. 중앙일보 퇴직사우 10명을 비롯해 40명이 함께 떠난 단체여행이었다. 10월28일 새벽 서울을 출발, 고속도로를 달려 오후2시쯤 부산에 도착했다. 대구를 지날 때만 해도 청명하던 하늘이 부산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렸다. 일본열도를 따라 북상하는 태풍영향인 것 같았다. 우리의 목적지도 그 태풍의 영향을 받아 일기가 불손하다고 해서 걱정이 되었다. 벼르고 별러 떠나온 길인데 하필이면 태풍이 올게 뭐람? 일행 중 한 사람이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더니 우리가 그 지경.”이라고 했다.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서울을 능가하는 부산의 교통 혼잡 때문에 일정을 일부 바꿔 먼저 국제시장 골목의 인파속을 걸으며 항도 부산의 활기를 몸으로 느꼈다. 이어 큰길을 건너 자갈치시장의 생선회와 술 한 잔도 빼놓을 수 없었다. 길 떠나는 나그네의 즐거움이 함께 더해진 술 한 잔의 맛을 아는 사람은 안다.
평소보다 배 출항시간이 빨라진 탓에 일행은 서둘러 부산 신항 국제여객터미널로 가서 출국수속을 마쳤다. 이날 밤 광안대교에서 불꽃놀이 행사가 있어 부관페리가 일찍 외항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출국장은 여행객들로 북새통이라 한참을 기다려 배에 올랐다. 워낙 큰 배여서 식당은 물론 목욕실까지 있어서 좋았다. 식사를 마친 나의 일행은 선실 바닥에 둘러앉아 준비해온 술과 안주, 과자를 나누며 현해탄의 밤을 만끽했다. 그리고 광안리 앞바다와 하늘을 밝히는 대형 불꽃놀이까지 덤으로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그래서 현해탄의 밤은 즐겁고 아름다운가 보다. 각 선실의 전등이 꺼지면서 모두가 꿈나라로 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배에서 식사를 하고 세관이 열리자 우리들은 일본의 관문 시모노세키에 내렸다. 여행객들이 많기도 했지만 일본세관의 입국절차 또한 까다로워 입국장은 돛대기 시장을 방불케 했다. 가이드들의 도움을 받아 세관을 나온 우리들은 대형 버스에 올라 자쿠찌야마 트레킹 길에 올랐다. 우리들의 염원과 달리 제법 굵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속도로로 들어간 버스는 그 비속을 세 시간쯤 달려 12시쯤 목적지에 우리들을 데려다 주었다. 점심은 버스 안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그런데 우리들의 소원이 통했던지 비는 멈춰 있었다. 기념촬영을 마친 일행은 편백숲이 울창한 산길로 들어갔다. 하늘 높은 줄만 아는 듯 나무들은 끝이 안 보일만큼 높이 자랐다. 우거진 잎에다 날씨까지 흐려 숲길은 어둡게까지 느껴졌다. 몇 군데 가파른 곳도 있었지만 산길은 비교적 순탄해 걷기에 부담이 없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더 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숲 사이로 꼬불꼬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40명의 행렬도 꼬불꼬불 움직였다. 오직 우리뿐이었다. 마주 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산길 왼편은 편백나무 세상이고 오른편은 일반적 나무들의 숲이 많은 것이었다. 이 산길이 야마구찌현과 히로시마현의 경계라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이 산의 최고봉은 해발 1,337m라고 했다. 그렇지만 완만한 코스여서 높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대략 한 시간마다 잠시 쉬었다 가기를 계속했다. 중턱 쯤에 오르니 다시 바람이 세어지고 비도 내리기 시작했다. 길은 어느 새 키 작은 나무들과 산죽이 우거진 곳을 지나고 있었다. 여러 색깔의 비옷들이 그 사이를 헤치며 나가고 있었다. 가끔씩 몰려왔다 사라지는 짙은 운무가 멋진 수묵화를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비속을 올라가니 마침내 산 정상을 알리는 나무기둥으로 된 표지가 우리를 반긴다. 내 키 높이의 그 기둥에는 한자로 ‘寂地山山頂 一,三三七米 山口縣’이라 세로로 씌어 있었다. 아마도 이날은 우리밖에 찾아 온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頂上 標識木과의 반가운 만남을 시샘하듯 비바람은 때맞춰 강하게 몰아쳤다. 그 풍우 속에서도 귀한 순간을 담으려는 우리들의 촬영은 한없이 이어졌다. 좀체 오기 힘든 곳이기에 더욱 그랬다. 나 또한 마지막까지 버티며 사진을 찍었다.
하산 길은 비에 젖어 더욱 조심스러웠다. 특히 정상에서 약 1km 떨어진 임간도로까지는 경사가 매우 심한데다 왼쪽은 천길 낭떠러지였다. 울창한 숲 사이로 꼬불꼬불, 굽이굽이 가파르게 내려가는 길이라 한 눈 팔 새가 없었다. 선두와 후미 사이가 멀어지다 가까워 지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새 포장이 된 임도에 닿았다. 오늘의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비는 이제 거의 그친 상태. 임도 좌우를 오기며 이어지는 계곡엔 비에 물이 불은 계곡물이 큰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길은 평탄했지만 주차장까지는 한 시간 가량 걸렸다.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해 예정했던 몇 개의 폭포엔 들리지 못하고 버스를 타야했다. 버스는 어둠속을 한 시간쯤 달려 이와쿠니시의 호텔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사우들은 호텔 로비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피로를 풀었고 이와쿠니시의 밤길을 산책하며 여행길의 새로운 먹고 마실 거리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러다 근처 편의점에서 약주로 알고 잘 못 산 25도짜리 소주를 방에서 나누어 마시며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더 했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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