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허공에서 만든 또 하나의 추억

솔뫼1 2018. 6. 2. 11:25



허공에서 만든 또 하나의 추억

 

 

둘이 마주 본다. 그러나 말이 없다. 그저 쳐다만 봤다. 그러면서 함께 공중을 날았다. 한참을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순식간에 내려와 다시 반대쪽 하늘로 치솟았다. 밧줄을 거머쥔 양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닿을 듯 말 듯 밀접한 몸과 몸이 눈으로 부딪친다. 더 높게 올라가고 싶다는 것을 둘은 안다. 부딪치는 눈빛 속으로 6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인생은 추억 만들기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 추억들이 아름답고 즐겁다면 삶 또한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런 추억거리들을 찾아 떠나는가 보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어 며칠 전 영월과 단양으로 추억 만들기 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아홉 명이 함께 다녀왔다. 혼자 가기가 심심해서 그랬던 건 아니고 거기에서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아주 새로운 추억을 하나 더 담아서 왔다.



내 고향은 경북 서부지역에 있는 가야산 동쪽이다. 가야산의 한 줄기가 동으로 힘차게 벋어오다 낙동강이 빚어놓은 벌판 속으로 스며든 작고 조용한 성주 읍이다. 그 읍에는 초등학교가 둘이 있는데 내가 다닌 학교는 한 학년이 서너 개 학급뿐인 작은 학교였다. 그 곳에서 우리들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경향각지로 흩어져 살았다. 그러다 20여 년 전부터 우리들은 다시 매년 6월 둘째 토요일 고향과 서울의 중간쯤 되는데서 만났다.

 

작은 읍이어서 우리들 대부분은 학교에서 먼 농촌 마을에서 다녔다. 나도 그렇게 다녔다. 학교까지는 약 3km쯤 되었는데 넓은 벌판을 지나야 했고 좁은 개울을 두 개나 건너야 했다. 그 개울은 평소엔 물이 조금밖에 흐르지 않지만 비만 오면 물살이 빠르고 깊어져 아이들에게는 매우 위험했다. 그런 개울을 건너고 넓은 벌판을 지나다닌 우리들은 많은 추억들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 추억들을 반추하며 옛정을 다지고 싶어 친구들은 가능하면 많이 참석했다.

 

우리들은 매년 장소를 바꾸어 가며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해는 계곡에서 천렵을 했고 어느 해는 바닷가에서 철 이른 해수욕을 즐겼다. 또 언젠가는 월악산 중턱까지 산행도 했다. 그리고 그 고장의 특산물로 만든 음식에 한잔 술로 흥을 돋우며 우정을 다져왔다. 물론 노래방에서 함께 어울려 노랫가락에 춤추며 노는 것도 빼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의 추억 만들기는 예년과 달랐다. 40명가량이 모였지만 매년 즐겼던 노래방 행사를 생략했다. 술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반주수준 정도만 마셨다. 그 대신 유서 깊은 유적지를 찾고 자연이 빚은 신비한 동굴탐사를 즐겼다.


 

그날 우리들은 대구와 고향, 서울에서 각각 출발해 영월 청령포 주차장에서 11시쯤 만났다. 그리고 도선을 타고 동강을 건너가 한을 품고 죽어간 비운의 군주 단종(端宗)의 거소를 둘러봤다. 거소 주변의 우거진 송림은 푸르렀고 뒤쪽의 산은 태산처럼 높고 가팔랐다. 그 소나무들 가운데서 유독 그날의 현장을 지켜봤을 수령600년 정도의 낙락장송은 그 아픔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이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 이름 지었다. 단종 임금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고 비탄의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단다. 그 거목 앞에서 우리들은 모두 권력의 무자비함과 역사의 무심함에 할 말을 잃었다.



 

청령포를 떠나 우리들은 근처의 김삿갓 묘와 문학관에 들려 속세를 등지고 살다 간 천재 풍류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러나 기념품 가게에서 산 대나무 삿갓을 쓰고 기념 촬영하는 걸로 대신하고 단양으로 향했다. 산자수려한 소백산 줄기와 계곡을 차창너머로 완상하며 도착한 곳은 온달장군이 수양을 했다는 온달동굴. 그 입구에 서니 그와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떠오른다. 기기묘묘한 괴석들이 조명을 받아 신비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굴 안은 시원했다. 동굴을 따라 구불구불 설치된 통로 아래엔 맑은 물이 흐르는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은 허리를 최대한 숙여 기어가듯 지나야 했고 어떤 곳은 조명불빛이 닿지 않아 깊이나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동굴탐사를 하고 나온 일행은 근처 유원지 벤치에 모여 남은 음식과 과일, 그리고 지역특산 막걸리로 석별의 정을 달랬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아주 새롭고 오래 기억될 멋진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은 누구나 자주 접하지만 손수 하기는 쉽지 않은 쌍그네타기였다. 근처엔 튼튼하게 매어진 대형 그네가 있었지만 아무도 탈 엄두를 내지 않고 있었다.


 

그네는 보통 여자들이 단오 무렵 많이 탔다. 나도 어릴 때 읍내 개천가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의 그네타기대회를 자주 봤다. 남자들이 씨름대회를 하는 한편에서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그네를 절대로 타지 않았다. 그런데 그 그네를 그날 내가 탄 것이다. 그것도 여자와 함께 마주 보면서 타는 쌍그네였다. 아무도 타지 않고 있는 그 순간 여자 동창생이 함께 쌍그네 타자고 제안했다. 먼저 청하지는 못 해도 들어오는 제의를 거절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우리 둘은 동창생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한꺼번에 받으며 구름 한 점 없는 오후의 하늘을 향해 힘차게 발을 굴려 솟구침을 계속했다. 지금도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는 70을 바라보는 여자동창생의 힘찬 발 굴림에 나도 힘껏 발을 굴려 화답하며 동심으로 돌아갔다. 내 앞에는 어느새 개울을 함께 건너던 옆 마을의 그  어렸던 여자아이가 와있었다.


< 추신 > 이 글은 2017년6월10일 영월 청령포에서 가진 초등학교 동기동창회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