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어느 봄날의 기억
갑자기 먼 옛날 어느 봄날의 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생각난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에 입학하러 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신작로 길에 아버지와 나 단둘이만 걸어가고 있었다. 꼭 61년 전이다. 무척 넓고 끝이 안 보이는 길은 어린 나에겐 너무 멀었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아버지는 말도 없이 성큼성큼 걸으셨고 나는 강아지 종종걸음 치듯 따라가기 바빴다. 아버지는 비교적 이야기를 잘 하신 분이었는데 그날엔 말이 없었다. 내가 묻는 말에만 간단히 대답하셨다. 당시 나는 만 여덟 살짜리 어린 아이었다. 나는 왜 그날 아버지와 단 둘이서만 입학하러 갔을까?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날은 모든 게 신기했다. 마치 천지가 개벽하듯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내 기억으로는 그날까지 내가 태어난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내 고향마을은 신작로에서 구불구불한 농용도로를 따라 2km쯤 들어가서 있다. 높게 자란 가로수들이 양옆으로 끝없이 늘어선 신작로를 나는 처음으로 걸었다. 읍내에 가본 것도 그 날이 처음이었다. 기와집 서너 채 말고 모두가 초가집이었던 내 고향마을만 보아 온 나에게 넓고 곧은 길 양편으로 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광경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짓고 있는 큰 집들도 보였다. 또 한 곳은 무척 넓고 네모난 시멘트 바닥만 있고 둘레엔 무너진 벽, 부러지고 휘어진 철근과 시멘트 기둥들 여러 개도 보였다. 그곳이 6.25때 폭격으로 불탄 큰 정미소 터란 것은 한 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신기하고 생소했기에 아직도 나는 그 날의 일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그 날이 4월3일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새 학기가 4월에 시작됐는데 입학하러 갔던 날을 3일이라고 기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고향의 읍에선 닷새마다 장이 섰다. 내가 입학하러 갔던 날은 그 장날 바로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닷새마다 서는 장날을 어린아이인 내가 기억하는 것도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그날 내가 느꼈던 놀랍고도 즐거웠던 일들은 결코 잊히지가 않는다. 사실 그 해의 입학식은 하루 전에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그날 입학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나는 입학하고 온 동무들에게 읍내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듣고서 ‘왜 나는 학교에 안 보내주느냐’고 밤늦도록 보채다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학교에 안 보내준다고 내가 떼를 썼던 일은 그 한해 전에도 있었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나이가 안돼서 못 간다고 했었다. 그러나 나하고 동갑내기들이 모두 학교에 갔다고 떼를 쓰자 내 출생신고가 늦게 돼 못 간다면서 나를 달랬었다. 그런 일이 있고 한해가 지났는데 입학식 날 또 못 갔으니 아예 학교를 안 보내 줄까봐 겁이 나서 더욱 떼를 썼던 것 같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엉뚱했던 생각 때문에 내가 입학식 날 학교에 못 간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장에서 볼일이 많았는데 나를 먼저 입학시키고 나면 다른 일들을 마치기가 어려웠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신 혼자 장마당 일을 다 처리한 후 학교로 가서 관계자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셨단다. ‘아이는 내일부터 학교에 보낼 테니 입학처리를 해 달라.’고. 아버지는 같은 마을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수십 명이나 되니 나를 그들과 함께 보내면 될 거라고 생각하신 것이다. 그런데 학교 관계자는 젊잖게 “당신이 학교에 입학하러 오셨소? 그게 아니라면 내일 꼭 취학 아동을 데리고 와서 입학시키시오!”라며 무안까지 주셨단다. 그래서 다음날 아버지는 바쁜 농사철임에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읍내까지 왕복 6km나 되는 외로운 걸음을 하셔야 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보다 하루 늦게 입학을 하게 됐다,
그날 아버지는 나를 교무실로 바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커다란 책상, 걸상들이 있었고 선생님들도 많았다. 또 무지하게 넓은 운동장과 엄청나게 큰 학교건물도 보았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수많은 아이들도 보았다. 그리고 한참 후 나는 예쁜 여선생님 손을 잡고 운동장에 모여 있는 코흘리개들의 무리로 들어갔다. 거기엔 같은 마을 친구들이 여덟 명이나 있었다. 예쁜 선생님도 좋았고 또래의 조무래기들과도 만났으니 그 이상 신날게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또 학교에 못 갈 줄 알았던 걱정도 사라졌기에 그 즐거움과 감격은 더 컸다.
나는 오늘 15개월이 채 안 된 외손녀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었다. 평소엔 딸과 사위가 데려다 주고 출근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들이 다른 사정이 있어 집사람이 데려다 주게 되었는데 내가 따라간 것이다. 아직 어려서 엄마와 안 떨어지려 하는 손녀다. 그런 손녀를 달래 어린이집까지는 즐겁게 갔다. 그런데 어린이집 대문에 도착하자 내게서 안 떨어지려고 울기 시작했다. 그런 손녀를 보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그때 문득 내 초등학교 입학날 일이 생각났다.
불과 14개월 된 어린 손녀가 벌써부터 험난한 세파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은 걱정스런 감정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첫해에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아버지의 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훗날 내가 친구들보다 너무 어리석어 한 해 늦게 입학시켰다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어리석었기에 그러셨을까? 그리고 다음해엔 내가 충분히 똑똑해졌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셨을까? 안 떨어지려는 손녀에게서 내가 느낀 감정과 어리석은 아들을 학교에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대를 이어 통하는 걸 느꼈다. 잠시 울던 손녀가 선생님 품에서 울음을 그치는 걸 보면서 어린이집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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