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한가위 연휴 素描

솔뫼1 2019. 9. 15. 10:22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




한가위가 지나갔다. 어렸을 땐 그렇게도 손꼽아 기다렸던 그 한가위다. 그리고 무척 즐겁고 행복해 했던 날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기다림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딱히 언제부터 그렇게 느끼게 된 건 지는 모르겠다.

올해도 그랬다. 나흘간의 긴 연휴가 시작된 추석전날 온종일 간간이 가랑비가 내렸다.

그 비를 맞으며 집사람과 동네 재래시장에 들려 토란을 많이 사왔다. 추석날 식구들이 먹을 토란국을 끓이기 위해서다.

그리고 서툰 솜씨로 토란껍질을 벗긴 것이 내가 추석명절을 위해 한 일의 전부였다.

주부들이 볼 때는 우습겠지만 명절준비라고는 전혀 손수 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엄청난 변화라고 자랑하고 싶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다 연휴를 맞아 집에 온 큰 딸이 엄마를 도와 몇가지 음식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토란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딸과 함께 동네 치킨집에 가서 통닭을 사와 맥주를 마시며 추석기분을 내 보았다. 그렇게 연휴 첫날은 지나갔다.



추석날 아침 눈을 뜨니 햇살이 환하게 퍼지고 있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활짝 개였다.

서풍에 밀려가던 몇조각 구름만이 동쪽하늘에 떠있고 그 구름들사이호 눈부신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밖의 하늘, 남쪽과 서쪽 북쪽 하늘 어디에도 구름이라고는 없었다.

몇 조각 떠있던 동쪽하늘의 구름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 버려 온 하늘이 새파랗게 펼쳐졌다.

그야말로 '온전한 淸明!' 바로 그것이었다.



올해는 제사 모시러 큰집에도 안 가는 바람에 추석날이 전혀 추석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다만 이날이 추석임을 느끼게 하는 한 가지 일은 오후 늦은 시각 처가에서 예정된 처가 식구들과의 모임이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큰딸과 함께 타고 막내처남집으로 갔다.

집 뒤에는 멋진 공원이 있어 다른 형제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산책했다.

完全淸明을 자랑하는 하늘에서는 초가을의 따가운 햇살이 작렬했지만 터널을 이룬 공원의 수목에 가려 빛을 잃고 말았다.



저녁무렵 모든 형제들이 모였다. 79세의 맏형님부터 만3세의 손녀까지 18명이 만났다.

반갑고, 즐겁고, 왁짜지껄한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마음껏 먹었고, 마셨고, 떠들었고, 이야기했다. 맛있는 음식이 계속 나왔고, 각종 가을 과일들도 맛의 풍요로움을 더했다.

특히 광주 무등산에서만 재배돼 추석무렵에 나온다는 귀하신 몸 무등산수박까지 등장해 맛의 향연에 절정을 이루었다.

자기 몸통보다 더 굵은 수박을 끌어안은 세살짜리 손녀의 행복한 모습에서도 무등산수박의 진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하늘엔 둥근 달이 둥실 떴다.

중추가절의 상징이 바로 이것이리라. 기분좋게 취한 술기운 탓인지 달이 유난히 가깝게 느껴진다.

집으로 달려가는 승용차 차장 너머로 밝은 달이 주는 안온한 느낌을 즐겼다.

내가 달을 쫓는지, 달이 나를 쫓아오는지는 따지지 않겠다.

그렇게 추석달과 나는 밤길을 달려 우리집으로 왔고, 아파트의 15층 창문에서 다시 만나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을 몇 커트의 스마트 폰 사진속에 기록해두었다.

형제들과 만나 즐거웠던 시간이 준 여운이 남아 아내와 딸과 셋이 맥주를 더 마시며 추석날의 즐거움을 맘껏 누렸다.



연휴 사흘째 날엔 온 하늘이 하얀 구름으로 뒤덮혔다. 구름이 터진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간간이 보슬비까지 내렸다.

어제의 '완전청명과 너무도 대조되는 자연의 변화가 신비롭기까지 하다.

살살 날리듯 내리는 보슬비에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아내랑 오랜만에 창경궁 숲길을 걸었다.

옛 시절의 영화와 굴욕을 모두 품은채 전곽은 말이 없고 나무들은 무성했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 수시로 내리는 보슬비에 젖고있는 궁궐의 빈 전곽들에서 역사의 아픔을 반추해본다.

춘당지의 물에 거꾸로 비치는 전경에서 말 못할 애잔함이 느껴질뿐이다.

춘당(春塘)의 추색(秋色)은 예와 변함 없겠지만 물에 비치는 모습들은 옛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울긋불굿 아름답게 명절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을 반사하는 춘당의 잔물결은 아름다왔다.